1. 게임의 역사 (History of the game)

게임디자인이라는 강의에서 다루는 "게임의 역사"라는 항목은 잘못 찢어진 나무젓가락 같다.

잘못 찢어져서 사용하긴 불편하지만, 눈 앞의 자장면을 안 먹을 수는 없으니 억지로 사용해야하는 존재.

게임디자인 이론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게임의 역사를 왜 가르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강의를 보는 내내 "아이고 의미 없다"를 중얼 거렸다.

그냥 게임 소개서인가?

그럼 왜 과목명은 게임의 역사인거지?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별로 안좋은) 방법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 방법은 몇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우선 게임이 출시된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열된 게임의 역사는 다시 장르별, 플랫폼별, 개발자별, 회사별, 매출 순위별 등등 다양하게 분류하고, 자신이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맞게 가공할 수 있다.

하지만 분류하는 방법, 가공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순전히 책을 보다가, 아하! 하고 무릎을 친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모으고 분류하고 자신만의 정보로 만들 수 있다.

 

게임의 역사 / 러셀 드마리아 조니 L.윌슨

 

하지만 그런 것이 어렵다 보니 읽어도 뭔가 머리에 들어오진 않는다.
결국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만화책의 형태로도 책이 나오지만, 요즘 웹툰의 퀄리티만 못한 북미 코믹북 스타일의 그림체는 보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내용 구성도 위와 비슷하다.

 

 

위 2가지가 외국의 게임을 소개하는 책이라면, 아래는 한국의 게임을 소개하는 책이다. 물론 방식은 동일하다.

 

 

이 책도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이건 그냥 진짜 게임 목록이다. 이게 어떻게 역사가 되는 것일까?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면 역사일까?

천구백몇년, 어떤 회사가 있었는데, 창업자가 누구고, 어떤 개발자와 어떤 개발자가, 어떤 게임을 만들고, 게임에 대한 간략한 소개, 매출이 얼마였고...

과연 이런 것들에서 게임디자이너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게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는 게임의 역사

내가 생각할 때, 게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는 게임의 역사란, "게임의 진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게임의 설계이므로, 당연하게도 게임의 설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게임 디자인 과목에서 "게임의 역사"란 정말로 게임의 설계가 변하는 단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물론 위와 같은 피상적인 '역사'(의 나열)에 관한 강의가 있을 수도 있지만, 2시간이나 허비할 정도의 중요도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드코어게이밍101(http://www.hardcoregaming101.net/reviews/)이라는 사이트에만 들어가봐도,

알파벳 순서로 게임을 정리, 알파벳 순서로 시리즈 게임을 정리, 장르별로 게임을 정리, 서브장르별로 게임을 정리, 회사별로 게임을 정리, 시스템(콘솔 기기)별로 게임을 정리, 테마별로 게임을 정리하고 있다.

이런 좋은 자료가 있으니 참고만 하면 된다.

어떻게? 그냥 알고 싶은 기준을 정하고 찾아서 정리하면 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 함정이다.

그래서 "게임의 역사"라는 강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제대로 가르쳐주라고!

 

게임의 역사, 이렇게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만약 게임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강의를 한다면, 게임의 구성요소와 설계 부분에 있어서 전환점이나 큰 발전이 있었던 시점 혹은 작품을 기준으로 나누고, 그런 요소들이 나타난 계기(사회상, 하드웨어의 발전, 수퍼 천재의 장난 등)을 함께 알려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동전을 하나 넣으면 목숨이 3개를 주던 게임들, 보너스 목숨이라는 개념이 처음 추가된 게임, 슈팅게임에서 갤러그 처럼 합체가 나온 게임들, 단계별 무기 업그레이드, 폭탄이 나온 게임들, 무적 개념이 들어간 게임, 목숨이 아니라 에너지 게이지를 사용한 게임, 에너지 게이지 밑에 부스트 게이지가 추가된 게임, HP는 왜 빨강이고, MP는 파랑인가? 라든가...

시간 순서의 게임의 나열이 궁금한게 아니라, 게임이 발전하는 형태를 배워야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할 수 있고, 그걸 계기로 앞으로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할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를 더 많이 생각하는 좋은 게임디자이너들이 많이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강의였으면 좋지 않았을까?

만약 그래픽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강의 한다면, 게임디자이너 대상의 강의보다는 쉬울 것 같다. 바로 바로 눈에 보이니까, 흑백 - 컬러 - 해상도 증가 - 스크롤 기법, 타일 기법 - 유사3D - 실제 3D - 모델링 - 셰이딩 기법 - 애니메이션 기법- 스프라이트 한장씩 그리던 기법(이름 모름) - 키프레임, 모션캡쳐, 페이셜 애니메이션 등등

유튜브에 보면, 페르시아의 왕자나 모탈컴뱃 같은 게임들, 그림 위에 디지타이져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픽셀 드로닝을 수작업하는 영상을 찾아서 볼 수 있고, 영화 아바타에 사용된 기술을 응용해서 그대로 사용한 게임들도 있다. 자료는 아주 많은데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 있는 느낌이다.

프로그래머 대상도 마찬가지다. 결국 게임이 발전하면서 프로그래밍 기술도 함께 발전하고, 퐁부터 오픈 월드까지, 각각의 게임이 어떤 식의 기술 변화를 겪었는지, 그리고 학부생들이 싫어하는 공간 탐색 알고리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게임과 연결해서 설명한다면, 아, 이런 게임 만들려면 이런 알고리즘은 알아야 하는구나. 하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까?

게임의 역사를 통해서 게임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는 /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가 알아야 하는 / 게임 프로그래머가 알아야 하는 각각의 요소들이 어떻게 변했었는지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게임 디자이너, 게임 프로그래머,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뿐만 아니라, 사업이라든가, 유료화 모델이라든가, 분석이라든가, 게임 사운드라든가, 각각의 분야도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의 역사를 각 과정에 맞춰서 만드는 것 보다는, 각 과정의 강의 초반에 다시 게임의 역사를 다루는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예전에 이런 게임이 있었고, 몇년후 이런 게임이 나왔어요"라는 식의 게임의 역사 강의는 별로다.

 

다른 분야도 나열이 있긴 하지만, 게임처럼 심하게 나열만 하진 않는다.

미술의 역사, 음악의 역사, 건축의 역사, 자동차의 역사 등을 봐도 적어도 "무슨 시대, 무슨 양식, 대표적인 작가, 대표작" 이런 것들로 시대를 나누고 구분한다.

"무슨 시대는 무슨 양식(혹은 무슨 파)이 대 유행이었는데, 대표적인 작가로 XX를 그린 XX가 있지요. 그 특징은..."

"무슨 시대는 무슨 음악 양식이 대 유행이었는데, 대표적인 작곡가로 XX가 있고, 교향곡 XX~XX를 만들었지요. 그 특징은 ... "

"무슨 시대는 무슨 건축 양식이 대 유행이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XX 신전이 있지요. 그 특징은 ... "

 

개인적으로는 이런 게 더 좋다.

오히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 반짝이는 글들 읽다보면, 게임의 역사가 이런 식이었다면 "좀 더 재밌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https://www.gamemeca.com/view.php?gid=124521

[흥미기획] 한 눈에 알아보는 FPS의 역사

https://soundev.tistory.com/77

[1화] 게임음악의 역사(1부)

https://ppss.kr/archives/40905

[픗픗논문] 게임 유료화의 40년 역사

 

 

게임은 아직도 연구가 제대로 안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