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회사를 다녔다(3) 권고사직 레전드

오늘 눈이 오네. 눈이 오면 생각나는 내 인생의 권고사직 레전드.

난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퇴사한 적이 꽤나 많다.

경력이 20년이 넘어가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돈 안나오기 전에 잘 이직하는데 나는 좀 둔팅이고, 정이 많고, 사람을 믿는다.

한번 믿겠다고 했으면 뭔가 일이 안풀리거나 손해 보게 될 때까지 믿어본다.
그래서 내 주식 잔고가 그 모양인가?

암튼 권고사직을 꽤나 많이 당했는데 2개 정도가 레전드인데, 오늘은 그 첫뻔째 레전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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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유독 추운 12월의 어느날이었다.
나는 오전에 건강검진을 끝내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쁘게 달려온 지난 1년을 회상하며...

내가 다녔던 회사는 작은 게임 개발사였다.
회사 운영이 위태위태했지만 그래도 월급이 밀리지는 않았다.

우리 프로젝트는 중국 유명 퍼블리셔가 계약을 하고 싶다고 하고 있었으니, 퍼블리싱 계약만 되면 중국 심천에서 일하게 될 수도 있었다. 걱정이라면 가족들을 두고 가야한다는 점?

중국에 가게되면 건강검진을 못 할 것 같아서 계속 미루던 건강검진을 12월 마지막 주에 끝냈다.

게임회사는 원래 이렇게 바쁜 것이 매력이라고 생각하며 병원에서 주는 죽을 빨아먹고 회사로 갔다.

오후 반차 내고 쉬고 싶었지만 사장님이 오늘 오후에 공지할 게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가는 중이다.

몇일 안남았으니 남은 날은 그냥 쉬자고 할지도? 유럽계 회사는 마지막주에 이주 정도 오프 하던데 ㅋㅋㅋ 우리회사도 그럴려나?

회사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은 다 점심 먹으러 갔고, 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잠시 눈을 붙였다.

수면마취하고 내시경을 해서 그런지 졸려서 눈을 잠깐 감았는데, 옆자리에서 내 이름을 부른다.
'어얼~'하며 침이 주릅...

벌써 오후 3시? 사장님이 공지하신다고 한 시간이었다.

'나 계속 잔고야? 대박...'

회의실로 갔다. 우리들은 모두 의자에 앉아 웅성웅성, 이사님 표정이 별로다.
'일시켜야되는데 연말에 쉬자고 해서 그런걸까?'

우리는 저마다 왜 불렀을까? 이야기를 하며 중국쪽에서 좋은 소식이 있나보다 했다.
곧 사장님이 들어오고 표정이 밝다!
뭔가 기대된다! 무슨 얘길 하실려나?

그리고 시작된 세상 사는 이야기. 중국 출장 이야기. 중국 사무실 이야기.

이것 저것 하다가 본론으로 들어가실 준비를 한다.
"회사 운영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띠용? 이게 뭔 개소리야?
중국 사무소 내고 가족들까지 중국 가놓고???

그후로 뭘 듣긴 들었는데 여기서 부터 잘 기억이 안나고,
삼 개월 정도 회사 다닐 수 있게 해주겠다. 이런 얘기 들은 것 같은데...
나중에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아니라고 ㅋㅋㅋ

암튼 우리 프로젝트는 접혔고, 우리팀만 모두 이번 달 까지만 출근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했다.
'이번 달 일주일 남았잖어?'

자리로 돌아와서 사람들이 하나 둘 짐을 싸길래 나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나뭇잎, 모니터암, 키마헤드셋, 마우스패드, 책, 피규어, 하아... 뭐 이렇게 많아...

그때 옆 사람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아까 엄청 심각하신 표정으로 가만히 계셔서 괜잖냐고...
그래서 "네? 괜찮은데요."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못들은 내용들이 꽤 많았다. 하하하...

그래서 그 분한테, "오전에 건강검진 받고 왔어요. 마취가 덜 풀려서 그랬나봐요"
그랬더니 그 분이 "아아..." 하면서 잃어버린 30분간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 눈뜨고 졸고 있었던 거였어... ㅋㅋㅋ
성지영 눈을 하고 가만히 있어서 사람들이 나 충격 받은 줄 알았대ㅋㅋㅋ

이야기를 듣고 "아 거기서 부턴 기억나요"하면서 박스에 짐을 넣고 테이프로 포장했다.

보드 마카로 내 이름을 적어두고 회사를 나왔다.
오후 5시... 간만의 칼 퇴근이었다.